찰나생멸,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시간 개념


쳇바퀴같은 단편적인 삶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고 한달을 살아가고 일년을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같은 삶을 살고 내일의 삶은 오늘과 비슷한 전처를 밟는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똑같다 보니 구분이 가지않고 주말만을 기다린다. 주말에 황급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단편적인 활동을 한다. 계속 똑같은 쳇바퀴를 맴돌며 매번 같은 길로가는 것으로 굳어진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바쁘다. 할 일이 끊이질 않는다. 하나의 큰 삶의 과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삶의 과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그 과제는 끝이 없다. 삶이 선택이 아닌 누군가 선택한 삶의 과정을 답습하여 체험하기 바쁘다. 혹여 내 삶을 창조하고 선택하려고 하면 많은 우려섞인 시선과 훼방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내 삶을 살기위해서는 용기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보통의, 평균의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용기, 그것도 매순간 그런 용기를 가져야한다. 잠깐의 찰나에 졸거나 하면 용기를 내기전 상황으로 순식간에 돌아가고 만다.


엄청난 기술발전의 속도, 그로인해 한 인간에게 요구하는 고난이도 과제 그리고 끊이없는 너무 많은 삶의 과제 그것을 효율적으로 빨리 처리하다보니 결국엔 기계처럼 정해져있는 무의식적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한다. 새로운 것은 없다.


너무 많은 삶의 과제 > 너무 효율적임을 추구 > 무의식적 자동화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있고 너무 많은 일처리를 해야되는 우리는 기존의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거기에 젖어있다. 때문에 매순간 깨어나와야 할 에너지는 없다. 녹초가 된 몸과 단편적 욕구해소, 짧은 휴식의 레파토리에 강하게 갇히게 된다.


찰나생멸 있다가 사라지고 있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모습


찰나생멸, 찰나들의 향연


불교에서는 ‘찰나’라는 개념이 있다. 시간의 최소단위를 설명하는 말로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무엇을 하려던 찰나에~’와 같이 짧은 순간을 비유하거나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빗대어 ‘인생은 찰나이다.’와 같은 말을 쓰이곤 한다.


지금.. 바로 지금.. 아니 바로 지금!의 순간들이 찰나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찰나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찰나생멸’이라고 한다. 우리는 무수한 찰나들을 살아간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카메라 필름 하나 하나처럼, 이 필름들의 평행속에서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계속 똑같은 존재가 아니나 찰나를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속에서 살다보면 어떠한 감각에 개념에 굳어져 갇히고 만다. 찰나마다 깨어있는, 살아있는 기지를 발휘하여 매찰나에 생동감있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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