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불교용어가 은근히 많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부터 주인공, 이판사판, 해탈, 업, 면목, 경각심, 관조, 깨어있음 등 모두 불교용어에서 나온 것이다. 일상 속에서 쓰고 있는 불교용어들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보자.
1. 과거, 현재, 미래 (過去, 現在, 未來)
과거, 현재, 미래는 불교의 전세, 현세, 내세에서 나온 것으로 찰나생멸 속에서 전찰나, 현찰나, 후찰나로 구분하기 위함이다. 찰나는 순간이라는 시간개념이라기보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줄지어 있고 그것이 마치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를 삼세라고도 하는데 흔히 삼시세끼 할 때 삼시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2. 주인공 (主人公)
불교에서의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인공의 의미와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인공은 TV, 드라마, 영화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 주요하고 비중있는 인물 또는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공으로써의 특징적인 캐릭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주인공은 말그대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주인을 말한다.
어떠한 것에 물들어 특색이 있는 것보다 무색의 아무것 없이 비어있는 자신을 말한다. 즉 어떠한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득도한 인물을 가리킨다. 흔히 주인공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불교에서의 주인공은 오히려 무의 색에서 단단함을 지키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3. 이판사판 (理判事判)
이판사판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뒤가 없고 맞딱드려야할 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끝장을 봐야하는 상황에서의 태도를 말한다. 보통 “이렇게 된거 이판사판이야”와 같은 말이 사용된다.
이판사판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말로 한국에서만 있는 말이다. 그리고 원래 이판사판은 끝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였다. 이판은 은둔하여 수행하는 스님을 뜻하고 사판은 일을 하며 사찰을 지켜나가는 스님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 있었는데 승려는 최하층민의 신분이었고 이로인해 승려가 된다고 하는 것은 삶의 마지막 선택으로 봤다. 이런 맥락에서 마지막 선택이 뒤가 없는 때로 끝장을 봐야하는 시기로 와전된 것 같다.
이판사판이라고 하면 이번판에 사활을 걸겠다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는지 처음 알게되었다.
4. 해탈 (解脫)
일상속에서 많이 쓰이는 해탈은 비교적 불교용어 느낌에 대한 인식이 있다. 해탈은 어떠한 집착이나 욕심, 분노, 어리석음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말한다. 다만 불교에서는 무거운 느낌의 해탈인 반면 일상 생활 속에서 쓰이는 해탈은 비교적 가볍고 유머가 곁들여져 있다. “나 해탈했어”와 같은 말은 나 어떠한 것을 많이해서 경지에 이르렀다와 같은 유머 섞인 표현으로 쓰인다. 또 어떠한 것을 질려버렸다, 포기했다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5. 업 (業)
업은 입으로 흘러 나오는 말과 몸짓을 통한 동작으로 인해 생긴 인과관계를 말한다. 즉 자신의 유기체에서 출력되는 모든 것을 말하며 이러한 행위가 발생되는 원인은 과거의 행위가 지금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과거뿐만아니라 태어나기 전 그 전세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카르마, 보이지 않는 미묘한 영향들이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아이고 내 팔자야”, ‘팔자폈네’와 같이 팔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거의 업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기억 시점으로 가서 풀어나가거나 지금부터 업의 방향을 바꾸어 나가면 된다.
6. 면목 (面目)
일상생활에서 ‘면목이 없다’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체면을 의미하고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 부끄러움, 창피함, 미안함과 같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깨달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본연의 참모습을 말한다.
또 다른 단어로 많이 사용되는 진면목과 의미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숨겨져 있던 진면목이 드러나다’와 같이 진짜 얼굴, 본성이 드러났다는 의미이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맥락과 뉘앙스 차이로 구분한다.
7.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 (徒勞阿彌陀佛)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은 기성세대들이 그 시절에 종종 쓰던 말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물거품이 되었다 또는 헛수고가 되었다는 의미로 쓰였다.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10년 공부한 것이 도로 (헛된수고)가 되었다는 것이고 아미타불은 염불의 느낌으로 따라오는 말로 보인다.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생겨난 속설이 있는데 젊은 중이 어떤 마을의 처녀를 보고 사랑에 빠져 청혼을 했고 그 처녀는 10년 동안 내 손을 잡지않고 같이 동거하면 혼인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젊은 중은 10년이 되기 하루전에 참지못하고 손을 잡았고 처녀는 파랑새가 돼서 하늘로 날아갔다는 말이 있다.
10년공부가 헛되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너무 큰 기대나 집착은 내려놓고 목표를 띄어놓고 꾸준히 임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8. 경각심 (警覺心)
경각심은 우리 일상속에서 비교적 자주 쓰이는 말로 중요한 시점에서 마음이 흐트러져 있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방심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불교에서 경각심은 깨달을 경, 깨달을 각 또는 ~을 얻는다는 의미로 본래 성질을 일깨우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똑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자칫 잠이 든 상태처럼 자동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깨어있고 살아있는 하루를 보내고 그것이 하루하루 모여 만족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9. 관조 (觀照)
관조는 밝게 비추어 본다는 의미로 밝게 비춰서 볼 경우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자아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메타로 고요하게 있는 그대로 본다는 느낌이다. 나의 색깔, 주관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관조하는 습관을 가지다보면 평온한 마음 상태를 자주 느낄 수 있고 사물이나 사고에 있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길 수 있다.
10. 깨어 있음 (惺惺)
깨어 있음은 깨달아 알고 있는 상태로 있음, 깨우치다, 열려있다 등 과 같은 의미들로 열거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매순간 어느 부분을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알고 있다가도 어느순간에 모르게 되고 하는데 어느 부분에 있어 또는 전반적으로 깨달음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가 깨어 있음의 상태이다.
일상 생활속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 드러나지 않은 생각이나 소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깨어있으시네요’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떠한 생각보다는 깨어 있음의 성질 상태가 깨어 있음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지금 여기의 맥락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거나 눈빛이 살아있다던가 하는 유기체의 상태이다. 다만 번뇌가 없는 상태이다.
깨어있음은 불교에서 성성(惺惺)이라고도 불리는데 반짝이는 별처럼 또렷또렷함을 의미한다.